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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 vs <덱스터>: 킬러의 정의와 윤리, 그 경계에서카테고리 없음 2025. 5. 30. 11:06
K드라마 살인자ㅇ난감과 미국 드라마 덱스터가 킬러와 정의, 도덕적 질문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고, 문화, 범죄, 윤리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합니다.
⚖️ 정의는 언제나 명확하지 않다
제도가 실패했을 때, 누군가 킬러가 되어 정의를 실현하려 들면 어떻게 될까요? 2024년작 한국 스릴러 살인자ㅇ난감과 2006~2013, 2021년에 방영된 미국 범죄 시리즈 덱스터는 이 난해한 질문을 파고듭니다. 두 작품 모두 '살인'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지만, 단순한 잔혹성보다 '옳다고 믿는 행위'로 그려집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킬러 캐릭터가 주목받는 가운데, 문화·도덕·감정이 이런 정의를 어떻게 해석하게 만드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다른 배경, 같은 선택: 어떤 살인은 정당한가?
살인자ㅇ난감은 평범한 청년 이탕이 우연히 살인을 저지른 후, 피해자가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킬러의 길로 빠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는 점점 더 ‘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살인을 정당화하며 어둠에 잠식됩니다.
반면 덱스터는 낮에는 혈흔 분석가, 밤에는 치밀한 연쇄살인마인 덱스터 모건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그는 "죽어 마땅한 사람만 제거한다"는 철저한 규칙을 따릅니다.
두 인물 모두 킬러지만, 문화적 맥락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르게 만듭니다. 덱스터는 미국식 개인주의와 안티히어로 서사를 담고 있어, 덱스터의 행동을 '어쩔 수 없는 악'으로 표현하며 시청자가 그의 어두운 면마저 공감하게 만듭니다. 반면 살인자ㅇ난감은 공동체, 죄책감, 범죄의 심리적 후폭풍을 중시하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정서를 담아내 이탕의 이야기를 비극적 추락으로 묘사합니다.
⚖️ 킬러: 정의인가, 자기합리화인가?
법의 절차를 건너뛰는 '정의'는 두 드라마 모두의 중심 갈등입니다. 덱스터에서 덱스터는 양아버지이자 전직 경찰에게 배운 ‘살인의 룰’을 따릅니다. 하지만 누가 죽을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권리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 걸까요?
살인자ㅇ난감의 이탕은 애초에 정의를 실현하려 한 게 아닙니다. 우발적 살인을 계기로, 사후 합리화를 하며 킬러의 길로 빠집니다. 덱스터는 의도된 살인을 배우고 실행하지만, 이탕은 살아남기 위해 고민하고 고뇌합니다. 미국 드라마는 킬러를 히어로로 찬양하지만, 한국 드라마는 죄의식과 도덕적 부담에 짓눌린 인물로 묘사합니다.
🧠 딜레마: 우리는 살인자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두 드라마 모두 시청자가 킬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접근 방식은 다릅니다.
덱스터에서는 덱스터의 내면 독백이 주를 이루고, 그의 매력과 유머, 통제력 있는 모습은 오히려 시청자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 이야기는 감정보다 논리적 딜레마로 다가옵니다—그의 윤리적 ‘코드’는 진짜일까요, 아니면 자기기만일까요?
반면 살인자ㅇ난감은 이탕의 고통과 공포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갑니다. 그는 킬러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불가피한 상황에 몰려 갈등하게 됩니다. 이는 감정과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한국 드라마의 특징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 문화적 통찰: 법, 죄책감, 구원의 서사
한국 드라마는 공동체적 죄책감과 망가진 제도에 대한 분노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살인자ㅇ난감은 정의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을 이탕의 서사에 담아냅니다.
반대로 덱스터는 미국식 개인주의와 도덕적 유연함을 강조합니다. 덱스터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게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의 선택은 사회의 시선이 아닌, 개인의 규칙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 결론: 두 명의 킬러, 하나의 질문
살인자ㅇ난감과 덱스터는 킬러라는 소재를 통해 '살인이 정당할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 문화가 캐릭터를 형성하고 시청자의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 해답을 달리 만듭니다.
동서양 콘텐츠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함께 소비되는 지금, 이런 비교는 단순한 스토리텔링의 차원을 넘어, 인간성과 윤리, 정의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집니다.